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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자들의 자기표현과 역사적 대응

여성 스스로의 자기표현
내방가사는 16세기부터 창작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창작 및 향유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향유 및 전승은 19세기부터 20세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전환기의 시대이다. 먼저 전근대적 요소를 극복하여 근대 사회를 구현해 나가던 시기였고, 제국주의의 확장과 식민지의 저항이 서로 맞선 시기였다. 내방가사는 이러한 시대적 전환기에 특히 소외되고 억압되었던 이들의 자기표현과 대사회적 응전의 양상을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세계사적 가치를 지닌다.

내방가사에는 여성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해 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인류 역사에서 여성과 관련한 기록은 주로 여성을 대상으로 한 계몽과 교육의 글쓰기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상층 남성 지식인에 의해 주도되었다. 따라서 여성 스스로에 의한 자기표현으로서의 글쓰기와 기록의 결과물은 근대 전후까지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내방가사는 16세기 <규원가>에서부터 여성 스스로의 자기표현으로 출발하였으며, 중세적 질서에 대한 고발을 탄식이라는 발화양식을 토대로 표현하였다. 심지어 여성 계몽과 교육의 담론으로 시작된 <계녀가> 역시 지속적인 이본 생산을 통해 남성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하려는 여성을 자유롭게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분화의 중요한 특성이 바로 자기 서사의 확대라 할 수 있다.

<규원가> ⓒ우리역사넷
<계녀가>
이처럼 내방가사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 스스로를 표현하고 치유했던 글쓰기와 그 기록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더욱이 내방가사의 주 전승지가 영남지역 안동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이러한 의미는 더욱 커진다. 안동은 남성 중심의 유교이념이 가장 깊이 뿌리내린 지역이다. 이러한 지역에서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표현하고 기록하였다는 것은 내방가사가 지닌 독특한 가치이다. 중세 이래 유교적 이념이 가장 강한 곳에서 이러한 기록물이 전승되고 집적되어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항이다.

한편 내방가사는 여성들의 현실인식과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기록물이다. 세계사적 관점에서 국가가 위기에 처하거나 사회 변혁의 시기에 있을수록 여성은 늘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여성의 역할만이 강조되었고, 의무는 막중해졌다. 그러나 결코 여성이 시대담론을 주도하는 위치에는 있지 못하였다. 이는 한국의 근대에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여성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대사회적 인식을 그대로 담은 기록을 내방가사에서는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내방가사 창작 및 향유자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그들 스스로에 의해 창작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 및 조선의 역사를 다룬 <역대가>류나 <한양오백년가> 등의 가사를 즐겨 탐독하고 필사했던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한양오백년가>는 특히 일제강점기에 그 이본이 점차 확장되고 향유의 폭을 넓힘으로써 여성들에게까지 인기를 얻었다. 이는 당대 여성들이 내방가사를 통해 역사에 대한 관심과 대사회적 의무에 적극적인 관심을 지속하였음을 보여준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여성들은 스스로 역사를 이야기하고 역사 속의 자신들의 모습을 성찰하는 가사를 창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양오백년가> ⓒ국립한글박물관
내방가사 전승이 활발히 이루어지던 19~20세기 전반기 한국은 국가 강탈과 근대로의 전환이라는 이중고를 감내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방가사는 여성의 대사회적 현실인식과 시대정신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만주 망명 가사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일제 탄압과 만주 망명의 역사적 상황에서 여성의 탄식이 대사회적인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만주 망명 가사는 안동의 명문대가에 속한 여성들이 직접 창작한 것인데 자신의 문중이 만주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겪은 고통과 탄식을 핍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김우락(1854~1877) 여사의 <간운>와 <조손별서>, 근현대 격변기의 체험을 술회한 李東 여사의 <니 여사 격근 역> 등이 대표적이다.

<조손별서>
내방가사의 창작자인 여성들은 국가의 위기와 사회적 변혁기에 그들의 대사회적 인식과 응전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둘러싼 역사적 사명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인 기록자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내방가사는 바로 그러한 여성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 스스로의 책무와 사명감을 담아내고 있는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이러한 기록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그대로 증언하는 역사적 증언물로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상으로 여성이 자기 스스로를 표현하고 정체성을 확보해가는 과정과 역사의 주체로 역사적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적극 담아낸 결과물이 내방가사였음을 확인하였다. 내방가사는 19세기부터 20세기, 중세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근대로 접어드는 세계사적 전환기의 대표적 징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