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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서체와 두루마리의 예술성

독특한 글자체
내방가사는 전통 여성들의 독특한 글자체를 만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시대 여성은 한글을 통해 문자 향유의 주체가 될 수 있었고, 독특한 문체와 글자체를 만들었다. 한글 편지나 음식디미방 등에 사용되던 문체가 그것이고, 궁궐의 여성들이 사용했던 궁서체의 글자체가 그것이다. 가사의 창작과 필사 또한 그러한 문자 향유의 주된 활동 중 하나였다. 특히 당시 여성들의 가사 필사의 주된 동기가 글자체를 받기 위함이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음식디미방> ⓒ영양군청 문화관광과
현전하는 내방가사의 필사본에는 여성들의 독특한 글자체가 담겨있다. 이를 통해 문자가 지닌 미학적 특성과 가치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문자는 지식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서의 가치도 크지만 문자의 형태가 지닌 미학적 가치 또한 크다. 내방가사 향유자들에게 가사를 쓰고 베끼는 활동은 문자를 향유하는 또 하나의 미적 체험이었다.

세계 어디에서도 여성들이 그들만의 글자체를 만들어내고, 미적으로 다듬었으며, 글자에 대한 스스로의 애착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경우는 없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내방가사의 세계적 중요성과 독자성은 더욱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정자체 <녁가>
정자체 <도산육곡>
흘림체 <이향가>
흘림체 <계금석가>
실용적인 두루마리
한편 내방가사의 두루마리가 지닌 형태적 가치 또한 중요하다. 인류 문화사에서 두루마리 형태의 지적 저작물이 지닌 가치는 매우 크다. 두루마리 이전에도 돌, 도자기, 나무 등에 글자를 새겨 넣는 방식은 존재했었다. 그러나 두루마리에 와서야 사고의 공적 유통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통설이다. 중국에서도 두루마리는 선진시대부터 백서(帛書)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다. 이것은 비단과 같은 것에 글을 써서 만든 책으로, 긴 비단을 사용하여 두루마리 형태로 말아서 간직되었다. 두루마리는 휴대와 보관이 용이하다. 말아서 보관할 경우 표면이 직접 공기에 닿지 않아 서화면의 산화를 예방할 수 있어 보존성도 좋다는 장점이 있다.

<베틀가>
그러나 두루마리의 가치는 이러한 실용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이 지닌 미적 특성도 재조명되어야 한다. 내방가사 중 계녀가 같은 경우, 여성들이 시집갈 때 그들의 부모나 조모 등이 그들이 행위 규범들을 두루마리에 적어 소지품 속에 넣어주었다. 여성들은 혼자 있을 때나 가까운 동기나 친구들과 있을 때 이 두루마리를 펼쳐 가사를 읽었다. 이때 두루마리를 읽는 과정은 단순히 규범의 전달이나 지식의 유통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애절한 그리움을 풀어내는 행위였으며, 풀었던 그리움을 다시 내밀히 간직하는 행위였다. 이에 그 모든 과정은 감성의 미학적 체험으로 기억되었다.

그러나 내방가사의 두루마리 형태의 기록물은 훼손되기 쉬운 한지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보존이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또한 세계 인류 문화사에서 코덱스- 현대적인 책의 형태-의 등장으로 두루마리 형태의 기록물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현존하는 내방가사가 기록된 두루마리의 보존은 더욱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