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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류Ⅰ(남성 작품 필사)

남성의 작품이 여성들에 의해 필사된 가사류. <북천가>, <대명복수가> 등 당대에 유행하였던 남성의 작품들이 여성들에게까지 전파되어 유통된 작품이다.
대명복수가
대명복수가
대명복수가 / 戊辰(1929)趙洪儧 / 14.8×10.4㎝ / 경주손씨 중훈공파 주손가
원작자는 조우각(趙宇慤)이며 창작연대는 1824년(순조 24)이다. 경상북도 영천에서 만리관(萬里館)을 지어 그곳에서 학문을 익히고 글을 가르치며 이 가사를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명나라가 청나라에 의하여 멸망된 것을 슬퍼하며 병자호란 때 우리나라가 당한 치욕을 설욕하지 못한 것에 대한 통한을 토로하고 있다. 또한 강화를 주장한 최명길(崔鳴吉) 등을 신랄하게 비난하고 중국과 우리나라 역대의 충의열사들을 동원하여 청나라에게 복수하겠다는 다짐을 노래하고 있다.

대명복수가
대명복수가
대명복수가 / 1900년대 초반 / 14.0×19.9㎝ / 영천이씨 상장군파
조우각(趙宇慤)이 1824년(순조 24)에 지은 작품을 필사한 가사이다. 청나라에게 명의 복수를 하고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지 못한 것을 한탄하고 복수해야 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한자어를 직접 한글이 아닌 한자로 적었다.

도산별곡
도산별곡
도산별곡 / 1911년 / 16.5×86.5㎝ / 고성이씨 보인재
조선 후기에 조성신(趙星臣, 1765~1835)이 지은 가사를 필사한 것이다. 1792년 도산서원의 치제(致祭)에서 별과(別科)에 참여하였던 사실을 회상하면서 그 때에 느꼈던 서원 주변의 경관과 이황 선생의 행덕을 사모하는 마음을 읊었다. 작품의 말미에 신해년 삼월에 필사하여 종매(從妹)에게 전한다는 기록이 있다.

별지가
별지가
별지가 / 1800년대 후반 / 21.2×1076.0㎝ / 전주류씨 류창석가
‘무진원월십칠일 김병한’의 필사기록이 확인된다.

북정가
북정가
북정가 / 1886년 이후 / 28.3×19.5㎝ / 풍산류씨 하회마을 화경당(북촌)
이중언이 1886년에 지은 유배가사를 필사한 작품이다. 구한말 사대부의 유배 과정을 통해 당시 혼탁한 현실을 고발하고자 한 장편 유배가사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서사, 본사, 결사로 이루어져 있다. 서사에서는 유배를 떠나게 된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과 모든 것을 팔자소관으로 체념하려는 심회를 서술했다. 본사에서는 영남의 추로지향 대명가에서 성장한 자신의 내력과 모든 부귀공명의 허무함, 유배 과정, 유배의 부당함,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한탄 등을 서술했는데 특히 병으로 인한 고통, 노자 부족으로 인한 고생, 신분 하락에 따른 치욕 등 유배 과정에서 겪는 고통을 자세하게 표현하였다. 결사에서는 세상과 타협하지 못하고 살아온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며 분수에 맞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고 있다.

북쳔가
북쳔가
북쳔가 / 20세기 초 / 26.0×400.0㎝ / 고성이씨 보인재
조선 철종 4년(1854년)에 김진형(金鎭衡)이 지은 유배가사로 후세 사람이 다시 필사한 것이다. 1853년(철종4) 홍문관교리로 있을 때 이조판서 서기순(徐箕淳)의 비행을 논척(論斥)하다가 반대파에 몰려 함경도 명천으로 유배되었다. 이 작품은 그 유배생활로부터 방면되어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읊은 가사이다. 내용은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령을 받는 신세, 서울로부터 북관(北關)까지 가는 유배과정, 북관에서 그곳 수령의 융숭한 대접과 칠봉산(七峯山)구경 및 기생 군산월(君山月)과의 사랑, 북관에서부터 유배지 명천까지 이르는 과정, 명천에 당도하자마자 방면된 소식을 접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과정과 강호·태평 등을 차례로 보여주고 있다. 작품은 두루마리 형태로 3가지의 북천가가 함께 적혀있다.

송슈가
송슈가
송슈가 / 20세기 초 / 20.9×222.2㎝ / 영천 오천정씨 삼휴종택
병오년 정월 장모님의 회갑을 맞이하여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내용의 남성가사를 필사한 작품이다.

출사표
출사표
출사표 / 20세기 초 / 27.7×10.5㎝ / 안동김씨 호장공파
촉(蜀)나라의 재상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위나라를 토벌하러 떠날 때 임금에게 올린 표를 가사체로 적은 작품이다. 출사표란 '군대를 일으키며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라는 의미인데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이는 충신이 아니라 하였다고 한다.

하늘이 창조하신
하늘이 창조하신
하늘이 창조하신 / 1970년(경술년) / 24.1×93.5㎝ / 영천이씨 운곡문중
저자가 64세에 지은 가사이다. 앞부분에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하면 자손에 대한 글을 적지 못할까 하여 가사를 기록한다고 되어 있다. 아들내외를 비롯한 자식들이 고생을 치하하고 손주들을 잘 키워 나라의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당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몽가
해몽가
해몽가 / 1800년대 / 19.8×369.2㎝ / 달성서씨 서정식家
‘율곡선생해몽가’를 필사한 가사이다. 도학사상을 바탕으로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는 계몽적 내용을 담고 있다. 영남지방의 사대부 가문에서 널리 애송되었던 작품이다. 표기로 미루어 19세기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