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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가류(離別歌類)

이별한 임을 그리워하거나 벗과 친지들과의 헤어짐을 슬퍼하며 부른 가사류. 이별의 아쉬움이 드러나며 주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다.
군산월니애원가
군산월니애원가
군산월니애원가 / 20세기 초 / 24.5×872.0㎝ / 양주송씨 한성주부파
한권의 전적에 ‘명복수가’, ‘답가’, ‘교여가’, ‘칠셕가’, ‘궁여가라’와 함께 수록된 가사이다. 단과 행의 구분이 없는 줄글 형태의 필사본이다. ‘군원가’는 가사집 『별교』에 실려 있던 가사이다. 작품의 주인공 군산월(君山月)은 조선조 철종대의 관료였던 청외(晴葨) 김진형(金鎭衛)의 유배가사 ‘북천가’에 등장하는 함경도 명천(明川)의 기녀(妓女)이다. 청외(晴葨)가 함경도 명천에 유배되었을 때 그를 수청 든 여인이며 청외(晴葨)가 해배(解配)되었을 때 그를 배행(陪行)하였다가 도중 청외(晴葨)의 마음이 변하여 버림 받은 불운한 여인이다. ‘군원가’는 ‘군산월’을 화자로 내세워 김진형이 ‘북천가(北遷歌)’에서 애써 드러내고자 하지 않았던 군산월(君山月)과의 석연치 않은 이별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필사본의 경우 원작의 뒷부분이 많이 생략되어 있다.

답사친가
답사친가
답사친가 / 20세기 초 / 17.5×199.6cm / 재령이씨 후계파
<조손별서>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고성이씨 가문에서 하회마을로 시집간 손녀가 만주에서 보내온 친정 할머니의 서간을 받은 반가움과 망국의 비운을 노래한 가사이다. 두번에 걸친 친정 고성이씨 가문의 만주 망명과 그에 따른 작자의 애절한 심정을 읊고 마지막으로 국운의 회복을 기원하고 있다. 망국의 비운을 당한 당시의 시대상이 잘 드러나 있다.

상ᄉᆞ별곡이라
이미지작업중
상ᄉᆞ별곡이라 / 1835년(을미년) / 21.2×26.2㎝ / 안동김씨 호장공파
님을 상사(相思)하는 마음을 묘사하고, 죽고 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옛정이 있다면 다시 볼 수 있도록 태어나길 기원한다는 내용을 담은 가사이다. 작품 마지막에 ‘본ᄃᆡ 이 그리 상놈이 지은 그린고로 육두문ᄌᆞ을 기록ᄒᆞᆫ니 가소한 인ᄉᆡᆼ드라 웃지마라, 세상에 ᄂᆡ외 모로난 ᄉᆞᆷᄅᆞᆷ이 잇나, 이걸보고 쥬둥아리가 ᄶᅢ지도록 우서보와라, 발얼천서 죽길거신니 이리 알고 부ᄃᆡ 웃지마라.’라고 필사의 계기를 기록하였다.

송별답가
송별답가
송별답가 / 1900년대 중반 / 24.0×248.0㎝ / 전주최씨 인재공파 북애고택
서울의 예천종제와 길안정실 등 종반을 만나서 창경원, 남산 등을 구경하고 내려온 후 종제가 보낸 이별가에 대한 답가로 쓴 가사이다. 마지막 부분에 재차 차운을 바란다는 당부와 함께 ‘니ᄇᆡᆨ뉵십사귀’라는 전체 글귀수도 기록하였다. 제목 부분에 토지매매계약서가 배접되어 있다.

원별가
원별가
원별가 / 1927년 / 28.3×19.8㎝ / 전주이씨 이휘家
여동생을 시집보낼 때 이별의 아쉬움을 노래한 가사이다. 전반부에는 경진년(1920년) 삼월에 엄부가 돌아가셨을 때 삼녀일남 중에 남매가 아직까지 혼례를 치루지 않았으며 의지할 곳이 없어진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이후 동생이 혼례를 치르게 되어 이별을 하게 된 심정을 읊고 회재선생의 후예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를 당부하고 있다.

원별답가
원별답가
원별답가 / 1960년(경자년) / 28.0×167.5.6㎝ / 전주류씨 류창석가
이별가에 대한 답으로 지은 가사이다. 전주류씨의 집성촌인 ‘슈곡촌(수곡촌)’에서 헤어짐의 슬픔을 노래하였다.

전별가
전별가
전별가 / 1914년(갑입년) / 16.2×404.8㎝ / 진성이씨 묵와고택
고향의 형제 친척들과의 이별을 슬퍼하며 지은 가사이다.

조손별서
조손별서
조손별서 / 20세기 초 / 23.0×554.5㎝ / 재령이씨 후계파
석주 이상룡의 부인 김우락 여사의 작품이다. 1911년에 안동을 떠나 만주 망명길에 손녀에게 보낸 것으로 남편의 독립운동의 염원과 어여쁜 손녀에게 할머니의 소회를 풀어 놓는 형식의 가사로, 가족사와 함께한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손녀가 태어났을 때의 기쁨, 시집 보낼 때의 아쉬움, 친정 행차했을 때의 반가움, 다시 헤어질 때의 슬픔 등. 특히, 할아버지의 결단으로 나라를 떠나게 됐을 때 손녀와 헤어지면서 느낀 회한이 매우 절절하다. 여전히 만나지 못해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내용과 한스럽다는 말, 손녀가 훌륭히 잘 자라나기를 소망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한권의 두루마리에 <답사친가> 와 함께 수록되어 있으며 마지막에 갑오년 이월의 필사연대가 나타난다.

칠석가
칠석가
칠석가 / 1800년대 후반 / 31.7×21.0㎝ / 영천이씨 상장군파
직녀가 베를 짜며 견우와 만날 칠석날을 기다리는 마음과 칠석날 견우를 만나 반가운 마음과 헤어질 때 슬픈 심정이 담겨 있다.

타향길…
타향길…
타향길… / 20세기 초 / 23.5×59.0㎝ / 전주류씨 류창석가
한 권의 두루마리에 청춘자탄가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보통학교를 부모님의 은덕으로 졸업하고 16세에 서울로 가서 겪은 객창감이 드러나 있다. 후반부에는 20세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징병을 가게 되어 고향과 이별하게 된 정한을 노래하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있다.

한글가사
한글가사
한글가사 / 20세기 초 / 17.5×351.0㎝ / 안동권씨 수곡후손가
민대비와 흥선대원군이 망국지가를 부르게 하였다고 탄식하고, 이에 삼강오륜이 무너진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본문 중에 안동 가곡의 지명이 나타나 저자의 정보를 추측할 수 있다. 저자는 안동 가곡에서 망명길에 기차를 타고 가면서 경부선은 말이 못갈까 놓았으며, 한강의 철교는 나를 가라고 놓았냐고 하며 고국을 떠나게 된 한탄을 읊고 있다.